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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사진이 잘 안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평양교예학교 제1기양성생들의 졸업작품발표회를 보아주시였다.

모든 종목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면서 그이께서는 본래 하던 배우들보다 낫다고 크게 만족해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점심식사시간이 다 되였는데 나머지 종목들은 다음 기회에 보시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자라난 어린 교예배우들이 재치있게 공연하는것을 보니 시간가는줄도 모르겠다고 하시며 공연을 계속하라고 이르시였다.

눈뿌리 아득한 공중에서 맵시있고 우아한 률동을 보여주는 《공중3인그네》가 펼쳐졌다.

그이께서는 새 작품인데 잘한다고, 세사람이 꼭 한사람같이 동작하는데 마치 세쌍둥이같다고 먼저 박수를 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우리의 주체교예가 나아갈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는 강령적인 말씀을 주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때였다. 양성생들이 달려오더니 그이께 자기들의 소원 한가지를 꼭 풀어달라고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웃음을 지으시며 무슨 소원이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졸업기념사진을 찍고싶습니다.》

《그래, 그래, 오늘같이 기쁘고 뜻깊은 날에야 사진을 찍어야지. 함께 찍자구.》

양성생들은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그들의 어깨를 다독이시며 말씀하시였다.

《자, 그러지 말구 여기 나와 서라구. ⋯울면 사진이 잘 안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달래이시며 말씀하시였다.

《자, 어서⋯ 먼저 흑색필림으로 찍고 천연색필림으로 한번 더 찍자구.》

그러시고는 졸업작품들을 더 완성시켜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새 세대의 신인교예배우들이 훌륭하게 자라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하여 수령님을 모셔야 한다고 젖으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유희장의 기쁨

위대한 장군님께서 완공된 대성산유희장을 찾으신것은 주체66(1977)년 10월 2일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성산에 꾸려진 유희장의 전경을 감개무량하시여 오래도록 바라보시다가 유희장이 정말 멋있게 건설되였다고, 시민들과 어린이들이 좋아하겠다고 하시면서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랜 시간동안 모든 유희기구들을 다 돌아보시였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대성산 옛성터에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일군들은 벌써 몇번째나 이제는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는 청을 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가볍게 나무라시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우리가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 마음놓고 우리 어린이들에게 유희기구를 타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자주 나오지도 못하겠는데 좀 늦어지더라도 다 돌아보고 갑시다.》

그러시고는 다음 유희기구들은 어디에 있는가고, 어서 가보자고 하시며 어둠이 깃든 구내길을 앞장서 걸으시였다.

그이를 모신 일행이 관성단차유희장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관성단차가 보이자 성큼성큼 그리로 가시더니 거기에 오르려고 하시였다.

뒤따르던 일군들이 다급히 다가가 날도 어두운데 관성단차만은 안된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관성단차를 타본 동무들이 있는가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였다.

모두 대답을 못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것보라는듯이 여전히 웃으시며 우리 인민들이 타고 즐길 유희기구인데 나라고 못타겠는가고, 일없다고, 차라리 이렇게 어두운 때에 타야 무섭지도 않고 좋다고 하시며 크게 웃으시였다.

그이께서 타신 관성단차가 정류소에 무사히 와닿자 내내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을 조이던 일군들이 그이께로 달려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며 말씀하시였다.

손자, 손녀들을 거느리고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름지기 하늘로 왔다 갔다하는 이 관성단차가 미덥지 않아 《아서라, 사고라도 치면 어쩔려구.》 하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타보았다고 하면 《어서 타거라. 어서.》 하고 말할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이께서 어찌나 재미나게 말씀하시는지 일군들도 와-하고 따라웃었다.

돈계산은 후에

주체69(1980)년 2월 2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완공단계에 이른 평양산원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건물을 돌아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평양산원을 훌륭하게 건설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평양에 현대적인 산원을 건설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산원을 건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에서 이번에 산원을 맡아 건설하였습니다.》

처음 평양산원건설을 시작할 때 해당 부문 일군들은 크게 마음먹고 침대수 500대규모의 산원설계를 내놓고 그것이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때 유럽에서 비교적 크다고 하는 어느 한 나라의 산원도 침대수가 450대정도였다.

그러니 500대의 침대를 예견한것은 대단한 용단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적어도 침대수가 1 500대는 되여야 하며 그중 어른침대 1 000대와 어린이침대 500대 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보육기를 더 사오자면 외화한도가 초과될뿐아니라 이미 예견한 대수를 가지고도 평양산원에서 태여나는 조산아, 미숙아들을 능히 키울수 있기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아닙니다. 더 사와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아이들을 위한 일에 돈을 아껴본적이 없습니다. …

산원설비를 필요한것을 다 차려놓은 다음에 돈을 계산해도 됩니다.

설비명세서는 즉석에서 고쳐졌다.

그리하여 값이 비싸서 사기 어려운 수많은 보육기를 비롯하여 수천점에 달하는 가장 정교하고 현대적인 최신식의 내부설비들이 들어오게 되였다.

어떤것은 극히 드문 질병을 진단하는데 쓰이는것이므로 1년에 한두번밖에 가동되지 않는 기구도 있는데 그 값이 무려 고급승용차 수십대분에 해당 되는것이였다.

《100m미인》이 《안팎미인》으로

주체70(1981)년 8월 13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완공을 앞둔 빙상관과 청류관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내부마감공사를 다그치고있는 빙상관을 찾으시여 왕관처럼 생긴 지붕이며 로케트발사대모양의 경사기둥을 보시고 웃음을 머금으시던 그이께서는 안에 들어서시여 원추형천정에 눈길을 주시고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천정에는 아연도철관장식띠를 돌기돌기 정성껏 주름잡아 붙여놓았다.

다른 나라 실내체육경기장들은 천정에 쇠창살을 댔지만 우리는 큰 마음 먹고 새롭게 아연도철판장식띠를 리용하였다. 그런데?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빙상관 바깥벽과 원형천정에 같은 철띠를 두른것은 좋지 않다고, 원형천정중심에는 형광등을 해살모양으로 다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였다.

출입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팎에 같은 외장재를 바른것은 잘못되였다. 미장면을 바로잡기 힘드니 외장재를 가지고 손쉬운 방법으로 곰보미장을 한것 같다. 일군들의 관점이 틀렸다. 휘거같은 사치한 운동을 하는 빙상관은 극장과 다름없으므로 홀 하나를 시공하여도 정성들여 잘하여야 한다. 안에도 철판, 밖에도 철판, 밖에도 외장재, 안에도 외장재, 이것이 무엇인가.

일군들은 죄책감을 금치 못해하면서도 우리 인민들에게 최상의것을 안겨주시려고 건설물의 구체적인 세부에 이르기까지 투시하시고 부족점을 지적해주시는 그이의 다심한 보살피심에 크게 감동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외장재를 바른 안벽과 타일을 붙인 바닥을 다 까내야겠다고 하시며 이렇게 지적하시였다.

빙상관이 《100m미인》같이 되였습니다. 《100m미인》이라는것은 멀리에서는 고와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밉다는 뜻입니다.

지금 상태를 가지고서는 빙상관을 인민들앞에 내놓을수 없습니다. 빙상관은 어느 개인의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써야 할 집이므로 성의를 다하여 잘 지어야 합니다.

결국 빙상관은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개작공사에 들어가게 되였다.

후에 다시 빙상관을 찾으신 그이께서는 어느모로 보나 손색이 없으니 이제는 인민들앞에 떳떳이 내놓으라고 말씀하시였다.

잊지 말아야 할 뿌리

주체70(1981)년 11월 5일밤 하루사업을 마무리하고 퇴근준비를 하던 한 일군의 방에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어오시는 전화였다.

그이께서는 나직한 어조로 항일혁명투사 장철구어머니의 집에 가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요즘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일군이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무렵 장철구어머니는 년로하여 집에서 휴식하고있었는데 건강이나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고있다는 문제가 제기된것이 없었다. 그래서 투사들의 생활을 보살펴줄 임무를 지닌 자신을 비롯한 일군들이 안심하고있었던것이다.

(혹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

수화기에서 그이의 걱정어린 음성이 다시 울렸다.

지금 장철구어머니가 앓고있으며 그 집 랭장고도 낡고 고장이 생겨 쓰지 못하고있다. ⋯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죄송합니다. 제가 일을 쓰게 못하여 어머니가 앓고있는줄도 몰랐습니다.》

《장철구어머니가 앓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아픕니다.

장철구어머니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수령님께 식사를 보장해드린 어머니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금을 준들 바꿀수 있겠습니까. ⋯ 지금 동무들이 행복하게 생활하다보니 그 뿌리를 잊어버리고있습니다.》

젖먹이어린것을 남의 집에 맡기고 항일전에 뛰여들어 사령부작식대원으로 싸워온 장철구어머니, 그와 같은 우리 혁명의 1세대 투사들이 수령님의 령도따라 피어린 투쟁을 벌린 대가로 우리 인민이 누리는 오늘의 행복이 마련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들을 잘 돌봐주지 못하고 앓고있는것도 모르고있었으니 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장철구어머니의 집에 빨리 찾아가 병치료조건과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여 보고하라고, 제기되는것이 있으면 다 풀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일군은 그길로 장철구어머니의 집에 달려갔다.

어머니는 자기는 아무일 없으니 너무 걱정말라고, 자기는 다만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건강만을 바랄뿐이라고 말하는것이였다.